같은 14살: 이중인격자로 키워지다
- 같은 14살은 범죄 사건 앞에서는 "알 만한 나이"가 되고, SNS 중독 앞에서는 "너무 어린 나이"가 된다
- 청소년의 성숙도는 청소년이 아니라 어른의 감정에 따라 판정된다
- 같은 청소년을 두 가지 잣대로 구속하며, 어른의 분노와 공포를 정당화한다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메시지(요구)를 동시에 받아,
어느 쪽을 선택해도 처벌받거나 실패하게 되는
심리적 딜레마 상황
지난달, 두 뉴스가 나왔다.
하나는 또래를 폭행한 14살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영상이 퍼졌고, 댓글 창이 차올랐다.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짓을 하느냐.
알 만한 나이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
소년법을 손봐야 한다.
며칠 뒤, 다른 뉴스가 나왔다.
SNS 중독에 빠진 14살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댓글 창이 다시 차올랐다.
어떻게 저 어린애들이 저렇게까지 빠져 있느냐.
너무 어리다.
SNS 이용 연령을 올려야 한다.
제한해야 한다.
두 댓글 창은 같은 구조였다.
같은 14살이다.
같은 사회는 한 번은 "알 만한 나이"라고 분노했고,
한 번은 "너무 어린애들"이라고 두려워했다.
그 모순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모순이라고 부르고 끝내면
그거야 말로 무책임한 태도다.
하지만 그 모순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더 불편한 장면이 나온다.
분노할 땐 어른. 두려울 땐 아이.
왜 이렇게 나뉘는가?
분노는 책임질 수 있는 대상에게 향한다.
갓난아이가 촛불을 넘어뜨려 불을 냈다고 해도,
그 아기에게 진심으로 화를 낼 수는 없다.
화를 내려면
먼저 상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알 만한 나이.
계산할 수 있는 나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나이.
그래야 우리가 마음껏 분노할 수 있다.
반대로 보호는 무력한 대상에게 작동한다.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보호한다고 말하면
말이 꼬인다.
따라서 '보호'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통제'는
약한 존재가 필요하다.
너무 어린 나이.
무방비한 나이.
막아줘야 할 나이.
그래야 우리가 마음껏 규제할 수 있다.
청소년의 성숙도는
청소년 자신이 아니라 어른의 감정에 따라 판정된다.
분노가 필요하면 청소년은 어른이 된다.
보호 본능이 필요하면 청소년은 아이가 된다.
그렇게, 청소년은 어른들의
감정의 그릇이자 쓰레기통이 된다.
우리는 같은 한 사람을
두 가지 모양으로 바꾸며,
우리의 감정을 처리한다.
참 편리하게도 말이다.

그 아이의 하루를 살펴보면
이러한 이중 구속이 확연히 드러난다.
학교에서 친구와 치고박고 싸운 14살은
학교폭력 사안으로 처리되고
학교폭력위원회는
징계 절차에 들어간다.
그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모에게 휴대폰을 빼앗긴다.
부모는 말한다.
"너 이런 거 너무 오래 보면 안 돼."
같은 14살이다
잘못 앞에서는 어른의 무게로 평가받는다.
보호 앞에서는 아이의 자리로 밀려난다.
학원에서는 곧 사회로 나갈 사람처럼 진로를 강요받는다.
병원에서는 자기 몸의 결정도 보호자 동의 없이는 어렵다.
성적과 진로 앞에서는 미래를 책임질 사람이다.
자기 몸과 생활을 결정하는 일 앞에서는 아직 모르는 아이다.
SNS 앱은 스스로 판단해 쓰지 못하게 막는다.
학교 폭력은 스스로 판단했으니 책임지라고 한다.
자유는 아이의 한도로.
책임은 어른의 무게로.
밥을 빨리 먹되, 천천히 씹어서 삼키라는 교육이
하루종일 일어나는 셈이다.
많은 심리학 연구에서,
조현병, 불안, 우울, 반사회적 행동 등과 이중 구속의
연관성을 지적한다.
어른들의 모순된 태도가
아이들의 정신병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소유보다는 욕망을,
분별 있는 연령보다는 청소년 시절을 사랑한다
I always prefer the bud to the full-blown flower, desire to possession, and youth to an age of discretion.
-앙드레 지이드(André Gide)
청소년기는 원래 모호하다.
신체는 성인에 가까워진다.
판단 능력도 빠르게 자란다.
그러나 사회 경험은 짧다.
감정에 흔들리는 폭도 크다.
어떤 면에서는 어른이다.
어떤 면에서는 아이다.
그 모호함은 결함이 아니다.
청소년기의 본질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 모호함을 견디지 못한다.
모호함을 견디려면 매번 따져봐야 한다.
지금 이 아이가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보호가 필요한지 봐야 한다.
우리는 이 번거로움을 인내하지 못하여
이중 구속을 들이민다.
분노할 땐 어른 취급한다.
두려울 땐 아이 취급한다.
그때그때 입맛대로 편의에 따라서 취급하는 것.
일관성이 없어서 편리한 건 어른이다.
다만, 그 편리함의 비용을 아이가 치를 뿐이다.
현상에 감춰진 본질을 통찰하는 태도가
진정한 변화를 만듭니다.
그게 아이겐 노트가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이유입니다.
참고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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