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착각하고 있다, 그것도 다섯가지나

Share
당신은 착각하고 있다, 그것도 다섯가지나

이해의 착각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더 이상 그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된다
고민이 멈추면 노력도 멈춘다

누군가 새 스마트폰을 샀다고 한다. 기분이 좋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이해한다고 느낀다.
포장지를 뜯는 설렘, 반짝이는 표면, 전원을 켜고 카메라를 열었을 때의 감탄.
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새 폰을 샀을 때의 날씨, 같이 있던 사람, 왜 바꾸게 됐는지, 스마트폰으로 주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무슨 색상들을 고민했는지...

셀 수 없이 많은 요인들이 합쳐진 것이 그 사람의 기분이다.
그 사람의 기분을 정말로 알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한 것은 이해가 아니다.
나의 과거 기억에 빗대어 짐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심리 실험이 있다.

한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변기, 자전거, 지퍼 같은 일상적인 물건을 보여주고
작동 원리를 얼마나 잘 아는지 스스로 평가하게 했다.

대부분 자신 있게 답했다.
변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단계별로 설명해 보라"고 하자 대부분이 멈췄다.

물이 어디서 나오고, 어떤 원리로 내려가며, 다시 어떻게 차오르는지
막상 설명하려니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실험 전 스스로 매긴 자신감 점수는
실험 후 절반으로 떨어졌다.

익숙한 것과 이해한 것은 다르다.
매일 쓰는 물건도 이 정도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 밑줄을 긋는다.
영상을 보면 "완전 공감"이라고 댓글을 단다.
그 순간 이해를 마쳤다고 느낀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이해가 내 행동을 바꾼 적이 있었는가.
밑줄 그은 문장을 다음 날 기억이나 했는가.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것은 이해가 아니었다.
수많은 겹과 벽을 거쳐 나에게 도착한
파편화된 감각을 이해라고 불렀을 뿐이다.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더 이상 그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된다.
고민이 멈추면 노력도 멈춘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부딪히고, 불편해지고, 이전과 달라졌을 때
비로소 이해가 시작된다.

그 전까지 우리가 이해라고 부르던 것은 착각이다.

경험의 착각

세상의 모든 것은 가치중립적으로 존재한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그것을 내가 직접할 때, 그제서야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

경험이 희귀해진 사회에 살고 있다.

아이가 무언가를 직접 해 보기도 전에 부모는 이미 답을 갖고 있다.
자녀 교육에 관한 책, 영상, 전문가 칼럼들을 충분히 수집했으니
최적화된 답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 속에서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온몸으로 알아갈 기회를 잃는다.

넘어져 봐야 아픈 줄 알고, 먹어 봐야 싫은 줄 아는데,
넘어지기 전에 손을 잡고 먹기 전에 빼앗는다.

그렇게 경험을 빼앗긴 아이들의 학창 시절도 다르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겉으로는 올바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 이후의 삶도 비슷하다.

절절한 사랑을 해 보기 전에 연애 프로그램이 연애를 대신한다.
출연자들의 밀고 당기기를 보면서,
패널들의 위트있는 멘트를 들으며,
연애의 감정을 이해했다고 느낀다.

30대가 되면 매일 같이 쏟아지는 결혼 알고리즘은
"좋은 배우자란~" "이런 남자는 무조건 잡아"이라며 떠들어 댄다.
그런데도 이혼율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없다.

경험 없이 결론만 남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가치중립적으로 존재한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그것을 내가 직접할 때, 그제서야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

이 아이에게 맞지 않던 양육 방식이 저 아이에게는 최고의 방식일 수 있다.
나에게 별로였던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영혼의 단짝일 수 있다.

해 보지 않은 사람은,
해 보지 않아서 모른다.

그런데 콘텐츠의 시대에서 간접 경험의 해상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그렇게 직접 경험의 자리는 좁아진다.
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잊게 만든다.

계산의 착각

삶의 방향, 관계의 깊이, 고민의 무게
이것들은 측정이 아니라 직면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다

연봉의 크기로 성공을 계산하고,
팔로워 수로 영향력을 평가하며,
시험 점수로 지적 수준을 가늠한다.

숫자가 붙는 순간 그것은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고,
객관적인 것은 옳다고 믿는다.

현대인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고민 중 하나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이다.
이 고민의 무게를 몇 kg 일까? 아니면 몇 m 일까?
이 세상 어떤 단위로도 표현할 수 없다.

숫자는 정밀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생각보다 흐릿하다.

점수가 나오면 직면 대신 비교를 하게 된다.
"평균보다 낫네" 혹은 "평균보다 못하네"로 끝나 버린다.
내 고민의 실체를 보는 대신 남의 고민과 견주는 것으로 대체된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며칠을 갔는지, 몇 개 도시를 돌았는지, 항공권을 얼마에 샀는지만 따진다.

숫자는 정리됐지만 그 여행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우습게도 자신의 삶도 그렇게 대하고 있다.

연봉은 올랐는데 왜 나아진 것이 없는지.
스펙은 쌓았는데 왜 확신이 없는지.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만 좇았기 때문이다.

삶의 방향, 관계의 깊이, 고민의 무게
이것들은 측정이 아니라 직면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다.

불안의 착각

안정적인 길을 고르고, 검증된 것만 선택한다
그러다 어느 날 리스크를 감수하고 성공한 사람을 마주한다

그때 드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안정을 추구하면 늘 억울하다

사람들은 불안을 옷에 튄 오물처럼 다룬다.
접시 위에 묻은 음식물처럼 수세미로 빡빡 닦으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불안하지 않은 동물은 멸종한다.

초원의 사자도 불안하고, 바다의 상어도 불안하다.
아무리 강한 코끼리도, 아무리 거대한 고래도 생존을 위해 불안을 안고 산다.
불안이 있기 때문에 위험을 감지하고, 움직이며, 살아남는다.

토스트 연기에도 경보가 울리는 화재 감지기가 때로는 불편하다.
그래도 실제 화재에 경보가 울리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불안을 제거하려면 리스크를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된다.
불확실한 것을 피하고, 안전한 쪽을 고르며,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나 창업도, 이직도, 고백도, 새로운 시도도 모두 리스크 위에 서 있다.
위험 없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망상이거나 사기일 뿐이다.

이 집착이 깊어지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안정적인 길을 고르고, 검증된 것만 선택한다.
그러다 어느 날 리스크를 감수하고 성공한 사람을 마주한다.

그때 드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안정을 추구하면 늘 억울하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저 사람이 더 잘되는가 하는 마음이다.

반복의 착각

형식은 따라 할 수 있지만 맥락은 따라 할 수 없다
그런데 형식을 복제하면 맥락까지 따라올 거라고 착각한다

누군가의 성공담을 듣는다.
어떤 방식으로 시작했고, 어떤 선택을 했으며, 어떤 습관을 가졌는지.
이야기가 구체적일수록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같은 루틴을 따르고, 같은 도구를 쓰며, 같은 순서를 밟는다.
그런데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 사람이 그 방식으로 성공한 데에는
성격, 환경, 타이밍, 관계, 운이 모두 얽혀 있다.
우리가 복제할 수 있는 것은 형식뿐이다.

형식은 따라 할 수 있지만 맥락은 따라 할 수 없다.
그런데 형식을 복제하면 맥락까지 따라올 거라고 착각한다.

이 시대는 그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성공한 사람들의 노하우, 루틴, 마인드셋이 끊임없이 콘텐츠로 쏟아진다.
접근이 쉬우니 적용도 쉬울 것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접하는 성공담은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다.
같은 방식을 썼지만 실패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는 콘텐츠가 되지 않는다.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그 방식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실제로는 그 방식이 아니라
그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착각은 타인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내가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때 통했던 방식을 같은 상황에서 다시 꺼내 든다.
예전에 이렇게 해서 됐으니 이번에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면서도 분명히 다르다.
나이가 달라졌고, 생각도 변했으며, 주변 환경도 달라졌다.

과거의 성공은 '그때의 나'가 '그때의 조건'에서 해낸 일이다.
지금의 나는 지금의 조건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반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지금의 나를 보지 못하게 된다.
내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복제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다섯 가지 착각은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관통하는 것은 하나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알고, 충분히 겪고, 충분히 계산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 믿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
  • 아직 해 보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것.
  • 숫자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 불안한 채로 움직이는 것.
  • 다른 사람의 방식과 과거의 나를 내려놓는 것.

전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피하려고 착각을 선택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무슨 착각을 하는지도 모른채로.


글이 길고 어렵죠?
그만큼 착각에서 벗어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읽겠다는 의지가 있고
실제로 읽었다면
분명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Read more

브랜딩, 소멸하기 위해 생존하다

브랜딩, 소멸하기 위해 생존하다

세 줄 요약 * 빠른 세계는 느린 고유함을 만들 수 없어서 돈을 들여 구매한다. * 느린 권위는 팔리지 않았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구매되는 순간 사라진다. *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되는 시대, 우리는 사라져야 가치가 있는 고유함의 역설을 마주하고 있다. 2021년, 무신사가 29CM를 샀다. 2026년, 무신사가 매거진 B를 샀다. 무신사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그리고 이 장면은

학부모 악성 민원, 이제는 처벌된다: 무가치함은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

학부모 악성 민원, 이제는 처벌된다: 무가치함은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

1. 부모의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지면, 자신의 공허를 ‘자식 사랑’으로 채운다 2. 무가치한 삶과 자식 사랑이 더해지면 교사를 괴롭힌다 3. 최고의 예방책은 각자 자신의 공허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2026년 3월 새 학기부터 학부모는 교사 개인 번호로 민원을 넣을 수 없게 됩니다. 학교 대표번호로만 연락할 수 있고, 악성 민원에는 과태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