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막고, 뒤에서 잡아끄는 문화
세 줄 요약
- 뛰어난 사람을 모으는 것과 뛰어난 조직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 명확한 방향 제시 또는 개인의 자율성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 앞에서 도전을 막고 뒤에서 책임을 잡아끄는 리더십은 당장 멈춰야 한다
이 글은 홍명보 감독 개인의 성품이나 의도를 판단하려는 글이 아니다. 공개된 경기와 대표팀 운영에서 드러난 결과를 조직문화와 리더십의 관점에서 해석한 글이다.
홍명보호를 둘러싼 논란에는 많은 문제가 얽혀 있다.
감독 선임 과정이 있었다.
축구협회의 행정 문제가 있었다.
경기 결과와 전술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최고의 선수를 모으면 최고의 팀이 되는가.
과거에는 스타플레이어 한 명이 경기 전체를 바꾸기도 했다.
지금도 슈퍼스타의 힘은 크다.
하지만 뛰어난 선수들이 한 팀에 모일수록 개인 기량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어디에 설 것인가.
언제 움직일 것인가.
동료가 움직일 때 누구는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각자의 능력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야 한다.
그것이 전술이다.
파인다이닝도 같다.
최고급 식재료는 좋은 음식의 기본이다.
하지만 좋은 재료를 한데 모았다고 좋은 요리가 되지는 않는다.
재료마다 온도가 다르다.
조리법이 다르다.
쓰임도 다르다.
좋은 요리는 좋은 재료의 합이 아니다.
재료의 쓰임을 정확하게 설계한 결과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을 뽑는 것과 좋은 성과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오히려 인재가 뛰어날수록 리더십은 더 중요해진다.
리더는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앞에서 끌거나 or 뒤에서 밀거나.
- 앞에서 끈다면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이루려는지 보여줘야 한다.
각자의 역할을 정리해야 한다.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 뒤에서 민다면 제대로 밀어야 한다.
정보를 줘야 한다.
권한을 줘야 한다.
실패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리더가 모든 답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구성원이 충분히 뛰어나다면 장애물만 치워줘도 된다.
문제는 둘 중 어느 것도 하지 않으면서
통제권만 쥐고 있는 조직이다.
비전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인이 자발적으로 비전을 정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 앞에서 막는다.
“검증된 사례가 없다.”
“아직 시기상조다.”
“실패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래서 속도를 늦추면 뒤에서 잡아끈다.
“왜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는가.”
“주인의식이 부족하다.”
“도전 정신이 없다.”
앞에서는 적당히 막는다.
뒤에서는 적당히 잡아끈다.
이런 조직에서 사람들은 성공하는 법보다 혼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운다.
먼저 움직이면 제지당한다.
기다리면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아무도 전력으로 뛰지 않는다.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에게 어떤 지시를 전달했는지는
외부에서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공개된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공유하는 움직임의 원칙과 목적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스스로 해법을 만들고
유기적으로 조정하는 모습도 충분히 나타나지 않았다.
문제는 좋은 선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좋은 선수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가 불분명했다.
회사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은 좋은 사람을 뽑기 위해 많은 비용을 쓴다.
그런데 입사한 뒤에는 기존 방식을 따르라고 한다.
스스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중요한 결정은 위에서 뒤집는다.
도전하라고 말한다.
실패하면 개인의 판단력을 문제 삼는다.
권한은 주지 않는다.
책임은 요구한다.
이런 조직은 인재를 활용하지 않는다.
인재를 길들인다.
그리고 사람들이 평범해지면 다시 묻는다.
“왜 우리 조직에는 뛰어난 사람이 없는가.”
인재가 많을수록 필요한 것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 무엇을 위해 함께 일하는가.
- 어디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가.
- 실패했을 때 무엇을 보호받을 수 있는가.
이 세 질문에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한다.
국가도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다.
한국에는 좋은 재료가 많다.
높은 교육 수준이 있다.
세계적인 기업이 있다.
각 분야에서 실력을 증명한 개인들이 있다.
이제 부족한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다.
그 능력을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그림이다.
국가가 모든 답을 정할 필요는 없다.
앞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
기업과 개인이 자신의 답을 찾도록 뒤에서 밀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반대로 행동한다.
누군가 선두에 서려 하면 말한다.
“레퍼런스가 없다.”
“우리가 1등을 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먼저 뛰기 시작하면 다시 말한다.
“너무 앞서간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조금 천천히 가야 한다.”
선두에 서는 것은 막는다.
스스로 뛰는 것도 잡아끈다.
그러면서 혁신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도전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홍명보호가 남긴 질문은 한 감독의 능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뛰어난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비전을 주고 있는가.
권한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자율을 외치면서 통제권만은 갖길 원하지 않는가?
불평등이 주는 편리함은 누리면서 공정만을 외치지는 않는가?
앞에서 끌 것이라면 방향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뒤에서 밀 것이라면 권한과 자원을 확실히 내줘야 한다.
결정이 어렵다면 반대로 생각해도 된다.
앞에서 적당히 막고, 뒤에서 적당히 잡아끄는 일,
어느 것부터 먼저 멈춰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