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목마를 바라보는 오디세우스의 표정은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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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이 목마의 승리는 적을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모두가 공유하던 신의까지 훼손했다.
  • 돈과 힘 앞에서 지켜야 할 것까지 거래하기 시작하면, 결국 승자도 무너진 세계의 비용을 함께 치른다.
  • 공동의 기준이 흔들리는 시대일수록 중요한 것은 세상의 방향보다 내가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지 정하는 일이다.

오디세우스는 계단에 주저앉아 불타는 트로이 목마를 바라본다.
승리한 사람의 얼굴이라기엔 어딘가 주눅들고 어찌할 바 모르는 표정이다.

목마에서 몰래 숨어들어와 성문을 열고 불은 붙였다.
그 불은 도시를 삼키고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
그때의 장면은 오디세우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트로이의 성문을 연 것은 목마의 크기가 아니었다.
인간끼리 지켜 온 최소한의 신의였다.

'아테나에게 바치는 제물.'

아무리 서로를 죽이는 전쟁 중이라도,
신의 이름까지 이용해 비열한 짓을 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적과 아군조차 그 믿음만큼은 공유했기에
같은 세계 안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바로 그 믿음을 이용했다.

그리스군은 시논을 남겨 거짓말을 하게 했고,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였다.

오디세우스는 단순히 적을 속인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으로 남겨 두었던 신의를 함정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겼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승리는 남지만, 발밑이 무너진 세계에서 승자라고 편할 수는 없다.
한 번 허용된 술수는 다음 전쟁에서 더 큰 술수를 부른다.
상대가 신의를 버렸다면 나도 버려야 하고,
내가 먼저 버렸다면 상대 역시 더 이상 지킬 이유가 없다.

그래서 계단 위의 불은 트로이만의 불이 아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을 팔아 버린 사람이
결국 다시 마주하게 되는 고통의 불이다.

권력과 돈은 그때나 지금이나 강력하다.
문제는 그런 힘 자체가 아니다.

힘 앞에서도 손대지 않던 것까지 가격표를 달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크게 한 탕하면 감옥쯤은 다녀와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
돈만 되면 헐벗은 몸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

으리으리한 집과 차를 장만했다면 그들의 영리한 계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반복될 때 깎여 나가는 것은 개인의 도덕성만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딛고 서 있는 땅이다.

약속은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
규칙은 적어도 어느 선까지는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
돈으로도 사지 않을 것이 있다는 믿음.

그 땅이 조금씩 사라지면 위기는 더 이상 남의 몫이 아니다.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사람도 결국 같은 땅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 불은 번지고 번져서 결국 승리한 사람까지도 집어삼킨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계단에 앉아 불을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는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본다.
타는 목마 대신 혐오와 분열,
서로를 속이는 말과 무너지는 약속을 본다.

그렇다고 오디세우스가 단순히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공동의 약속이 무너진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인류는 통합과 분열을 반복해 왔다.

통합의 시대에는 평화와 풍요가 찾아온다.
대신 거대한 질서 속에서 ‘나’가 작아지기 쉽다.
모두가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면
그 속에 나는 점점 흐릿하다.
공동체 의식이 강하면 나를 뚜렷하게 내세우기 어렵다.

분열의 시대에는 반대로 질서가 흔들린다.
불안하고 시끄럽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질문은 다시 개인에게 돌아온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가 아니라,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누구의 기준을 따를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

그때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이타카를 정해야 한다.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는 돌아가야 할 고향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타카는 꼭 하나의 장소일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끝까지 지키고 싶은 삶의 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이타카의 의미는 어쩌면 도착에 있지 않다.

그곳을 향해 가는 동안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절하며,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가에 있다.

도착하는 순간 여행은 끝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타카는 어쩌면 죽음과 닮았다.

그렇다면 삶은 결국 그곳에 닿기 전까지 이어지는 긴 여행이다.

트로이의 불을 뒤로하고,
무너진 약속들 사이를 지나,
내가 정한 방향으로 계속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일.
그 과정에서 만난 고난과 역경을 마주하는 일.

그리고 이티카라는 '끝'이 있다면,
인간에게 끝은 '죽음'이라면,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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