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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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1. 자신의 선의를 확신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까지 공익으로 설명하기 쉽다.
  2. 남에게 요구하던 원칙도 내 자리와 내 몫이 걸리는 순간 복잡한 사정으로 바뀐다.
  3. 정의는 남을 비판할 때보다 자신에게 불리한 기준을 받아들일 때 선명해진다.

남에게 원칙을 요구할 때는 말이 짧다. 자신을 설명할 때는 말이 길어진다.

남의 자리에는 특권이 보이고, 내 자리에는 책임이 보인다. 남이 받은 돈에는 의문이 생기고, 내가 받은 돈에는 그동안의 고생이 떠오른다. 같은 일을 두고도 남에게는 “왜 내려놓지 않느냐”고 묻고, 자신에게는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답한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도 이 질문을 불러온다. 의원직 유지와 배우자의 당직·급여를 두고 비판이 제기되자, 용 후보자는 겸직이 법률상 허용되며 배우자의 당직 임명에도 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반박했다. 의혹만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법과 절차에 관한 해명에 더해, 그 기준을 다른 정치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지 물을 수는 있다. MBC 보도

자신과 대립하는 정치인이 같은 선택을 하고 같은 이유를 댔더라도 충분한 설명으로 받아들였을까. 공정과 평등을 말하는 정치인의 신뢰는 이 질문을 통과할 때 단단해진다.

누군가 강렬하게 내세우는 사회적 이미지는 그 사람이 지향하는 가치를 보여준다. 동시에 자신에 대해 더는 의심하지 않는 영역을 만들기도 한다.

  • 나는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이므로 내가 행사하는 권력은 평등을 위한 것이다.
  • 나는 법치를 지키는 사람이므로 내가 찾는 예외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 나는 자유로운 토론을 원하는 사람이므로 내가 배제하는 의견은 토론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행동을 살피기 전에 결론이 정해진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목적을 가졌으니, 내가 하는 일에도 좋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깊은 문제는 본인도 그 설명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욕심을 욕심으로 알아차리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망설일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욕심을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라고 믿는 사람은 물러설 이유를 찾기 어렵다. 내가 자리를 지켜야 조직이 살고, 내가 권한을 가져야 개혁이 가능하며, 내가 영향력을 유지해야 약자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게 유리한 선택이 어느새 모두를 위한 선택이 된다.

세상에 정답이 있다고 굳게 믿는 태도도 이 확신과 만날 때 위험해진다. 세상은 언제나 자신의 정답에서 조금씩 빗겨난다. 그때 답을 고칠 수 없다면, 틀린 것은 세상과 그 안의 사람들이 된다.

아름다운 정답을 믿는 나는 착한 주인공이 되고, 반대하는 사람은 그 일을 방해하는 악역이 된다. 이야기와 영화에서 수없이 보았듯, 우리는 착한 주인공이 악당을 무찌르는 장면에 익숙하다. 상대를 악당으로 정한 뒤에는 그에게 가하는 부당함에도 쉽게 명분이 붙는다.

그렇게 원칙을 외치던 사람이 돈과 지위, 권한을 얻으면 새로운 갈등이 시작된다. 이제 원칙을 적용할 대상에 자신이 포함된다.

남의 부를 바라볼 때는 그것이 정당하게 만들어졌는지 물었다. 자신의 몫을 설명할 때는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애썼는지 말한다. 비난을 견뎠고, 밤을 새웠고, 조직을 지켰고,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 노력은 실제일 수 있다. 다만 노력했다는 사실이 취득 과정의 정당성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남에게는 분명히 구분했던 두 가지가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하나로 합쳐진다. 고생해서 얻었으니 마땅히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 가장 불편한 심판자는 과거의 자신이다.

과거의 자신은 지금의 해명을 쉽게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조직을 위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말에서 권력욕을 읽고,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말에서 책임 회피를 찾고, 정당한 보상이라는 말에서 기득권의 자기변호를 보았을 것이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그 모든 것이 사정이지만, 과거의 자신에게는 모두 핑계였을 수 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세상이 예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도 성숙의 일부다. 그러나 복잡성을 배웠다면 남을 이해하는 기준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 내 사정만 자세해지고 남을 향한 판단은 여전히 단순하다면, 그것을 성숙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공적 재원을 나누고 공동체를 위해 권한을 행사하는 일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이유는 결정하는 사람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도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선한 목적을 말할수록 자신의 몫을 더 투명하게 설명해야 하는 이유다.

정의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확인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에도 제동을 걸 수 있어야 원칙으로서 의미가 있다.

남에게 원칙을 요구할 때는 정의가 쉽고 단순하다.

그 원칙 때문에 내 몫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부터,
정의는 어렵고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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