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패스 논란, "아이는 새치기를 물었고, 어른은 가난을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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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패스 논란, "아이는 새치기를 물었고, 어른은 가난을 답했다"
  1. 아이는 매직패스를 보고 “왜 새치기해?”라고 물었을 뿐이다.
  2. 그 질문에 어른이 “엄마가 무능력해서 미안하다”고 답하는 순간, 줄서기의 문제는 가난의 문제로 바뀐다.
  3. 아이의 질문이 어른의 박탈김이 되어 아이에게 재전달된다.


최근 매직패스 논란이 있었다.

한 이용자가 롯데월드에 갔다가,
매직패스 이용자들이 옆 통로로 먼저 들어가는 장면을 봤다.

그는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아이가 물었다.

“저 사람들은 왜 새치기해?”

글쓴이는 그 말을 듣고
“엄마가 무능력해서 미안했다”고 했다.

그 한 문장이 퍼지면서
매직패스는 ‘서민 박탈감’ 논란이 됐다.

그런데 이 논란은 다시 읽어야 한다.
아이는 박탈감을 말한 것이 아니다.
아이는 새치기를 물었다.


아이의 질문은 정확하다.

아이는 ‘공정’이라는 추상을 거치지 않고,
‘줄’이라는 직관으로 세상을 보았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간다.
그것이 아이가 이해하는 규칙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옆 통로로 먼저 들어간다.

아이는 그 장면을 보고 새치기라고 부른다.

이때 어른이 할 수 있는 답은 여러 가지다.

“저건 놀이공원이 만든 별도 규칙이야.
돈을 더 내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게 해놓은 거야.”

규칙을 설명하는 답이다.

“저 사람들은 돈을 더 내고 시간을 아끼고 싶었나 봐.”

마음을 설명하는 답이다.

“우리는 그만큼 돈을 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어.
그래서 그냥 기다리는 쪽을 선택한 거야.”

선택을 설명하는 답이다.

이 답들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규칙을 설명하거나, 마음을 설명하거나, 선택을 설명한다.
솔직하게 돈이 없어서라고 말한다한들,
그 어떤 것도 틀린 답이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답을 통해
어른의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운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구조가 있다는 것.
그 구조가 늘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지금 우리는 그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돈을 같은 방식으로
쓸 필요는 없다는 것.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그러나 글쓴이는 다른 답을 골랐다.

“엄마가 무능력해서 미안했다.”

이 답은 규칙을 설명하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부모의 선택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이 답은 부모 자신의 감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아이에게 건넨다.

아이가 처음 느낀 것은 박탈감이라기보다
의아함에 가까웠을 것이다.

“왜 저 사람들은 먼저 가지?”

그 질문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무능력해서 미안하다”는 답을 듣는 순간,
아이의 질문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전까지 아이가 본 것은 줄과 옆 통로였다.

이제 아이가 보는 것은
‘돈이 없어서 줄에 서 있는 우리’와
‘돈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는 저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새치기였던 것이,
이제는 계층의 문제로 번역된다.

어른의 박탈감이 아이에게로 전가되는 순간이다.

매직패스 정책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순 없지만,
그 감정을 아이에게 어떤 언어로 설명하느냐는 어른의 몫이다.


여기서 “엄마가 무능력해서 미안했다”는 말이
무엇을 사과하는 말인지 풀어볼 필요가 있다.

조금 옮기면 이런 뜻이다.

“엄마가 너를 매직패스를 살 수 있는 아이로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한 번 더 옮기면 이렇게 된다.

“엄마는 너를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위치에
올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 말은 참 서글프다.
무한을 주어도 부족한 부모의 마음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것은 위험하다.

아이는 이 말을 통해
돈의 차이를 부모의 무능으로 배운다.

기다리는 일이 '선택'이 아니라 '결핍'이 된다.
매직패스를 사지 않은 일은 '판단'이 아니라 '실패'가 된다.

그러면 아이는 돈을 이렇게 배우게 된다.

돈이 없으면 미안해야 한다.
돈이 있으면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
돈으로 먼저 갈 수 있다면, 먼저 가는 게 최고다.

아이는 돈의 차이를
곧 자기 위치의 차이로 받아들인다.

박탈감은 그렇게 학습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다른 두 가지다.

  1. 돈이 없을 때 없다고 말할 수 있는 힘.
  2. 돈이 있을 때도 자기 판단으로 쓸 수 있는 힘.

매직패스가 없다고 자식에게 사과하는 부모는
첫 번째 힘을 약하게 만든다.

매직패스가 있다고 자식에게 으스대는 부모는
두 번째 힘을 망가뜨린다.

박탈감을 가르치는 부모와
과시를 가르치는 부모는 서로 닮아있다.

둘 다 돈의 차이를 아이의 자존감과 연결한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돈의 차이를 곧바로 부모의 무능으로 번역해
아이에게 건네는 일이다.

아이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줄을 서는 일이 아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사과가 아니라 설명이다.


부모의 죄책감이 가혹한 이유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 놀이공원에서는 매직패스를 떠올린다.
  • 학원에서는 개인 과외를 떠올린다.
  • 유치원에서는 영어유치원을 떠올린다.
  • 제주여행에서는 하와이여행을 떠올린다.

어떤 부모도 끝까지 충분할 수 없다.

어디까지 올라가도, 더 위에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
그래서 부모가 매번 사과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 좋은 학군에 살지 못해 미안하다고.
  • 좋은 가방을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 좋은 여행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 좋은 경험을 더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런데 이 사과는 정말 자식에게 필요한 말인가.
아니면 부모가 자신의 결핍감을 견디지 못해 꺼낸 말인가.

자식이 아직 결핍으로 느끼지 않은 것을,
부모가 먼저 결핍으로 가르칠 때가 있다.

그 순간 자식은 박탈당하기도 전에 박탈감을 배운다.


아이는 “저 사람들은 왜 새치기해?”라고 물었다.

그 질문은 그저 줄서기에 대한 질문이었다.

부모는 규칙을 설명하면 됐다.
마음을 설명하면 됐다.
선택을 설명하면 됐다.

그러나 어른은 자기 박탈감으로 답했다.
아이의 질문에 억울한 감정이 답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이가 서있는 자리도
박탈감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매직패스를 없애면 이런 감정이 모두 사라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차이는 어디에나 생긴다.
문제는 그 차이를 아이에게 어떤 언어로 설명하느냐다.

아이는 새치기를 물었다.
어른은 박탈감으로 답할 수도 있고,
규칙과 선택으로 답할 수도 있다.

다음 세대의 박탈감은 그 답에서 시작된다.


현상 뒤에서 본질을 읽어야만
진정으로 세상을 이롭게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게 eigen knot (아이겐 노트)가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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