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은 영악해야 한다
세 줄 요약
- JTBC는 한때 착한 이미지를 추구했다
- 그러나 착한 이미지를 돈으로 바꾸지 못해서 흔들리고 있다
- 착함으로 사람을 모았다면, 그들이 떠나지 못하게 하는 영악한 구조가 필요하다
JTBC가 채무불이행 상태다.
쉽게 말하면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 날에 돈이 모자랐다.
JTBC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 7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고,
2026년 3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2,443.9%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재무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착한' JTBC는 왜 돈을 못 벌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JTBC를 보며
자신이 옳은 편에 서 있다고 느꼈다.
정의롭고, 상식적이고, 권력에 저항하는 내 모습.
사람은 그런 이미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뉴스를 보고, 콘텐츠를 보고, 특정 방송사를 지지한다.
사람은 정보를 소비하지 않는다.
자기 이미지를 소비한다.
JTBC는 한때 이 심리를 정확히 건드렸다.
2016년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이후
JTBC는 많은 사람들에게
'권력 감시'와 '공정함'의 상징으로 소비됐다.
이 보도는 '국정농단'이라는 단어를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이런 행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JTBC를 보며
공정한 편에 서 있다고 믿는 자신을 흡족해했다.
이런 감정들은 사람을 결속시켜서 자연스럽게 팬덤을 만든다.
실제로 호감도 조사에서 JTBC는 늘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방송사 직원들은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직원들에게 지급할 돈을 어디선가 구해야 한다.
감정은 소비가 아니라, 소유해야 돈이 된다.
JTBC는 감정을 건드렸다.
그러나 그 감정을 소유하지 못했다.
이 기회를 놓쳤고,
특정 지지층이 가진 신뢰와 분노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빼았겼다.
방송사는 일으킨 바람을
플랫폼이 흡수해버린 셈이다.
착한 이미지에는 달콤한 함정이 있다.
착한 이미지는 사람을 쉽게 모은다.
불쌍한 할머니의 폐지를 같이 줍는 일,
가난한 학생의 끼니를 챙겨주는 일,
노숙자에게 입을 옷을 건네주는 일 등
모두의 호감과 응원을 사로 잡는 행위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감정을 소유할 수 없다.
사람을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매일 돌아올 이유가 필요하다.
유료 구독을 할만한 콘텐츠가,
돈을 쓰면서도 아깝지 않을 무언가를 떠먹여줘야 한다.
팬덤 기반의 채널들은 이걸 잘한다.
그들은 시청자가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안다.
어떤 분노에 오래 머무는지 안다.
시청자가 오래 머무는 장면,
다시 돌아오게 하는 말,
돈을 쓰게 만드는 감정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고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돈을 번다.
착한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착한 이미지 자체는 돈이 되지 않는다.
대중은 자신을 기분 좋게 해주는 편으로 간다.
분노를 대신 말해주고,
내가 옳다는 감각을 확인시켜주는 곳으로 간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라면,
그런 이미지를 추구한다면,
적어도 뒤에선 영악해야 한다.
시청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고정하고
소비하고, 즐기고, 때론 분노하는 그 지점을
자꾸만 건드려야 한다.
그것이 때로는 '양극화'나 '편협한 사고'를 키우는 건 맞다.
그러나, 이 글은 양극화에 대한 글이 아니다.
'착함'과 정반대의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착함이고 뭐고 필요 없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떤 목표를 쟁취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그는 '순수'해야 한다.
돈이 목적이라면 돈을 위해 사람을 모은다.
모인 사람들의 사상, 배경, 지위따윈 중요하지 않다.
그 목적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OK! 라고 외쳐야 한다.
돈 앞에, 그리고 돈을 버는 능력 앞에 만인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
돈을 말하면서 도덕성으로 사람을 걸러내면 시장을 잃는다.
실재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세상이다.
어쩌면 앞뒤가 뒤바뀐 세상.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앞뒤를 바꿔야 한다.
- 착한 사람은 영악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 영악한 사람은 순수한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