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선거가 와닿지 않았던 이유: 3년짜리 20대가 남긴 것들
- 청년이 늦게 시작하는 것은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긴 교육과 준비의 시간이 삶의 출발선을 뒤로 밀어놓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오래 가르치고 많이 준비시키지만, 정작 스스로 선택하고 실패하며 책임질 기회는 늦게 준다.
- 청년이 미성숙해서 붙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오래 붙잡아두기 때문에 미성숙해지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유튜브: eigen knot
교육감 선거가 있었다.
공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돌봄을 늘리고, 기초학력을 책임진다고 했다.
디지털 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덜고,
교권을 지키겠다고 했다
진보든 보수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을 더 넣고, 무엇을 더 챙기고,
무엇을 더 잘 가르칠지에 관한 말들이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마음에 들어오는 말도 하나 없었다.
모두가 12년이라는 그릇은 그대로 둔 채,
그 안에 무엇을 더 담을지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긴 시간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오래 붙들어 두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비슷한 자리에서 멈춰 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른 몇 살이 특히 그렇다.
결혼을 망설이고, 출산을 미룬다.
창업의 꿈을 접는다.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이가 걸린다고 한다.
직장 10년 차,
이제야 일이 제대로 손에 익어 한창 달릴 때인데,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이미 늦은 나이가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상관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다.
그런데 둘은 한자리에서 만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고등학교를 지나고,
대학에 가고, 취업을 준비하고,
스펙을 쌓고, 인턴을 거치고 나면
어느새 스물여섯, 스물여덟이다.
사회에 처음 발을 들이는 나이가
26~28살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20대는 온전히 20대로 존재하지 못한다.
그 시간 대부분은 입시와 취업,
준비와 유예로 채워진다.
준비는 길고, 시작은 늦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출발이 밀리면 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자리를 잡고, 돈을 모으고, 집을 알아보고,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고, 노후까지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기량이 가장 무르익는 5년 차, 10년 차에
이미 마흔을 바라본다.
커리어의 전성기와 인생의 숙제가
같은 시기에 들이닥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미룬다.
독립을 미루고,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미루고,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미룬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출발선이 너무 뒤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망설임처럼 보이는 이 미룸이 모이면,
우리가 사회문제라 부르는 것들의 윤곽이 된다.
교육감 공약이 허전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무엇을 가르칠지를 두고는 그렇게 다투면서,
왜 이토록 오래 붙잡아두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그 출발선을 통과한 사람들도
좀처럼 시작했다고 느끼지 못한다.
대학에 가면 취업이 진짜 시작이라 하고,
취업하면 자리 잡는 것이 진짜 시작이라 하고,
자리를 잡으면 또 그다음이 진짜 시작이라 한다.
준비의 끝에 도착하면,
거기에는 또 다른 준비가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청년만 붙잡아두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평생 누군가를 ‘아직 준비 중인 사람’으로 살게 하는 법을,
우리는 너무 일찍부터 배운다.
어른이 되는 나이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어른으로 살 권한은
좀처럼 그 나이에 맞춰 오지 않는다.

게다가 그 긴 준비가 정말 준비였는지도 분명치 않다.
12년 학제는 겉으로 보면 빈틈없이 체계적이다.
그러나 그 체계가 교실에서 실제로 하는 일은 이렇다.
수능 날 더 많은 문제를 더 빠르고 실수 없이 푸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 훈련을 너무 오래 끌고 있다.
그렇게 12년을 가르치고도
많은 사람이 계약서 한 장을 자신 있게 읽지 못한다.
통계를 의심하지 못하고,
정치인의 공약이나 기업의 설명이 믿을 만한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정작 사회에 나가 판단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힘은 거기서 자라지 않는다.
정답을 빨리 고르는 일이라면
이제 AI가 우리보다 훨씬 낫다.
교육이 가르쳐야 하는 건 다음과 같다.
무엇을 물을지 정하고,
답을 의심하고,
추진하고 판단을 책임지는 힘.
(eigen knot 가 주구장창 외치는)
현상 너머의 본질을 파악하는 '사고력',
그 힘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나는 기본 소양을 쌓는 기간과
학문의 기본기를 다지는 기간은
9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2년 학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않겠다.
그 숫자를 꺼내는 순간,
이야기는 늘 엉뚱한 곳으로 흘러간다.
9년이냐 12년이냐,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두고 다투다 보면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이 사라진다.
핵심은 기간이 아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리가 무엇을 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한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미뤄두는지다.
오래 가르치지만 늦게 선택하게 한다.
많이 준비시키지만 실패할 기회는 주지 않는다.
성숙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책임질 권한은 늦게 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졸업장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고,
실패해도 다시 길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권한을 자꾸 뒤로 미룬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준비된 다음에.
조금 더 안전해진 다음에.
조금 더 성숙해진 다음에.
정해진 길에서 일찍 벗어나는 쪽을 택해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은
한발 앞선 사회인이 아니라
영원히 오를 수 없는 어떤 벽을 마주한다.
빨리 어른이 되라더니,
막상 일찍 되려 하면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그렇게 권한은 자꾸 미뤄지고,
사람은 준비하는 자리에 더 오래 머문다.
준비만 하던 사람에게는
책임질 기회가 오지 않는다.
책임져본 적 없는 사람은 미성숙하다.
미성숙해 보이니까 우리는 그를 조금 더 붙잡아둔다.
조금 더 준비시킨다.
그리고 다시, 책임은 다음으로 미룬다.
그러니 질문은 다시 쓰여야 한다.
청년이 미성숙해서 붙잡아두는 것인가.
아니면 붙잡아두기 때문에 미성숙해지는 것인가.
현상 너머의 본질을 파헤치는
eigen knot (아이겐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