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참교육>의 흥행, 진상 민원인은 왜 생길까?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 흥행 중입니다.
교사를 함부로 대하던 학생과 학부모가,
처맞고 고꾸라지며 시원하게 제압당하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죠.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며 말합니다.
“속이 뻥 뚫린다.”
“저런 사람들은 저렇게 당해봐야 한다.”
“현실에서도 저렇게 해야 한다.”
마침 2026년 3월부터는
교사 개인 연락처로 민원을 넣을 수 없게 되었고,
악성 민원에는 과태료도 부과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우리는 문제의 절반만 본 것입니다.
<참교육>이 주는 사이다에만 취해 있으면
우리는 결국 이런 사회를 만들게 됩니다.
진상 학부모가 등장하면
그때마다 강하게 때려잡는 사회.
문제가 생기면 응징하고,
또 문제가 생기면 다시 응징하는 사회.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올라오는 순간만 기다리는 사회.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왜 그런 진상이 계속 생겨나는가.
이 질문을 묻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뿅망치를 들고 살아야 합니다.
바로 '무의미함'이다.
- 어빈 얄롬(Irvin Yalom), 실존 심리학자
악성 민원의 시작점은 부모 자신의 삶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이 의미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기를 바라고,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30, 40대가 넘어가면서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삶이 생각보다 별것 없구나...”
기대했던 성공은 멀고,
돈은 언제나 부족하기만 하고,
커리어는 더 이상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먹고는 살 만하지만,
무엇을 위해 먹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때 사람은 무언가를 ‘맹신’할 거리를 찾습니다.
돈이 가장 중요한 한국에서는
주식, 부동산, 주변의 인식 같은 것들이
그 맹신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는
‘아이’에게 매달립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네가 대신 이루어야 한다.
내가 견디지 못한 무가치함을
네가 증명해줘야 한다.
학부모의 마음에 이런 공허함이 커질수록
아이에 대한 집착도 커집니다.
그때부터는 이런 일이 펼쳐집니다.
아이의 학교 성적은아이의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실패 여부를 가르는 지표가 됩니다.
교사의 질책 한마디도 교육적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부모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아이가 혼나는 순간,
부모는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패감을 봅니다.
삶의 의미가 심하게 흔들리는 학부모일수록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은
도움을 주려는 사람마저
물 속으로 함께 끌고 들어간다고 하죠?
너무 절박한 나머지
이성을 잃은 인간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합니다.
진상 민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아이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자기 잘못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교사에게 눈을 돌립니다.
내 아이가 틀릴 수 없다면
교사가 틀려야 합니다.
내가 실패한 부모가 아니라면
교사가 잘못 지도한 것이어야 합니다.
내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학교가 문제여야 합니다.
이렇게 민원은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방어하는 전쟁이 됩니다.
그래서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상대는 지금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이 무너지는 느낌과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참교육> 장면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 대신 힘으로 제압하는 장면.
그 장면은 분명 통쾌합니다.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느낌도 줍니다.
하지만 두더지 잡기를 아무리 잘해도
땅속에서 두더지가 계속 자라면
게임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참교육>을 보며
단순히 박수만 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각자가
자기 삶의 공허를 제대로 마주해야 합니다.
먹고 살 수는 있는데,
뭔가 채워지지 않는 듯한 이 갈증.
카페에서 아이 교육 이야기에 매달리는 사람들,
주식 수익률에 하루 기분이 흔들리는 사람들,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를 비난하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
바라보는 대상은 다르지만,
그 밑바닥의 갈증은 비슷한 곳에서 출발합니다.
도대체 이 갈증은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요?
이 질문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진상이 계속 다른 얼굴로 나타날 것입니다.
eigen knot (아이겐 노트)가 던지는 질문은
“누구를 더 세게 때릴 것인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겪는 무가치함은 무엇인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