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부족했고, 악역은 필요했다: 심리학이 알려주는 충주맨 사태의 핵심
- 불확실한 사건 앞에서 우리는 끝내 ‘악역’을 만들어 낸다.
- 그 악역이 실재하지 않아도, 분노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 결국 분노의 뿌리는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퇴직 사유는 본인이 밝혔다
2026년 2월,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의 얼굴로 불리던 담당 공무원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100만 구독자 목표를 거의 달성했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짧은 작별 영상을 남기며 동료와 시민에게 감사 인사도 전했다.
그것이 사실의 전부였다.
그러나 인터넷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댓글창과 익명 커뮤니티에서 짧은 게시물들이 들불처럼 번졌다.
“왕따를 당했다.” “내부에서 시기를 받았다.” “질투한 동료들이 있다.”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빠르게, 그리고 점점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다듬어졌다.
그러자 당사자가 직접 나섰다.
내부 갈등설을 부인했고, 동료 공무원들이 공격받고 있다며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멈춰 달라고도 요청했다.
그러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이 사태를 “진짜 이유가 뭔가”라는 문제로만 접근하면, 우리는 팩트체크라는 놀이에 빠져 핵심을 놓치기 쉽다.
반면 “왜 사람들은 당사자가 부인한 이야기를 더 믿으려 하는가”를 묻는 순간, 훨씬 더 분명한 사건의 진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중요한데 불확실하면, 이야기가 생긴다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루머가 확산되는 두 가지 조건을 밝혔다.
루머의 유통량 = 중요성 × 모호성
어떤 사건이 중요하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가 불분명할수록,
이야기는 더 크게 돌고 더 빠르게 변형된다.
— 고든 올포트, 《루머의 심리학》(1947)
충주맨 사태는 이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했다.
공공기관 채널이 구독자 100만 명 직전까지 성장한 사례는 드물었다.
상징성이 컸다.
그리고 떠난 이유는 당사자의 말 외에는 분명하지 않았다.
공백이 생겼다.
인간은 공백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든다.
올포트는 루머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세 가지 일이 벌어진다고 관찰했다.
루머가 퍼지면서 일어나는 세 가지
요약 (Levelling) — 복잡한 맥락이 지워진다 조직 문화, 개인의 진로 고민, 채널 운영 방식의 변화… 이 모든 것이 삭제된다.
강조 (Sharpening) — 핵심으로 지목된 요소가 과장된다 "누군가 그를 괴롭혔다"는 한 점이 뾰족하게 남는다.
동화 (Assimilation) — 믿고 싶었던 방향으로 재구성된다 "공무원 조직은 원래 그래"라는 기존 편견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그릇을 만든다.
맞다.
복잡한 건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이 그를 질투했다"는 한 문장은 이해하기 매우 쉽다.
이렇게 사건은 단순해지고,
악인이 특정되며,
우리는 마침내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는 심판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멈춰야 할 질문이 있다.
왜 하필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누군가에게 쫓겨난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감을 얻을까?
폭력은 언제나 대리 표적을 찾는다
—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우리는 정체 모를 혼란에 빠질 때,
마땅히 공격할 대상을 찾아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일시적인 평화를 얻으려 한다.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충주맨 사태에서 희생양은
‘시기·질투하는 동료 공무원’이다.
그들에게 실제로 죄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죄가 충분히 “믿을 만하게 느껴지는가”라는 당위성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질투하는 동료 공무원’은
이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했다.
“공무원 조직은 꽉 막혀서 창의적인 사람을 미워한다”라는 믿음은
이미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기·질투가 실제로 있었나?
있었던 것 같긴 하다.
그 상황이 충주맨의 사퇴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나?
아무도 알 수 없다.
검증할 수 없으니 반박할 수도 없고,
반박할 수 없으니 분노는 계속 살아남는다.
집단은 결속을 위해 악마를 필요로 한다
— 에릭 호퍼, 《맹신자들》(1951)
대중은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빠르게 ‘우리 편’과 ‘저쪽 편’을 나누고,
내가 속한 집단을 편들기 시작한다.
[창의와 진정성의 집단 vs. 낡은 관료제의 집단.]
이 구도에서 누가 누구를 공격해야 할지는 너무나도 쉽다.
상대편은 요리하기 좋게 알맞게 손질된 밀키트 같은 상태다.
칼만 들고 썰어 대면 그럴듯한 요리가 뚝딱 완성된다.
잠깐, 그래서 공격하는 게 뭐가 좋을까?
공격은 공격하는 사람에게도 분명 피곤한 일이다.
호퍼는 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이 실체가 모호한 적군이라도 그 대상을 공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공격의 칼날을 휘두르는 동안,
대중은 공허함을 잊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시기·질투에 눈이 먼 공무원’이라는 가상의 적을 향한 비난은
나는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을 확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구독을 취소했다
사직 발표 이후 며칠 만에 구독자 수는 97만 5천에서 75만 1천으로 내려앉았다(한겨레, 2026년 2월 18일 기준).
이 숫자는 분노나 실망의 표현이라기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드러낸다.
사람들은 ‘충TV’를 구독한 것이 아니었다.
한 인간의 페르소나와 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래서 인물이 떠나면, 조직도 함께 타격을 받는다.
이런 구조는 해외에서도 반복됐다.
같은 구조가 반복된 국제 사례들
뉴질랜드 — 보건부 수장 애슐리 블룸필드 사임(2022)
코로나 브리핑의 얼굴로 국민적 신뢰를 얻었던 블룸필드가 번아웃을 이유로 임기 1년을 남기고 사임했다. 대중은 애도와 감사를 쏟아내는 동시에 “정권이 그를 소모했다”는 원인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스웨덴 — 수석 역학자 안데르스 테그넬 이탈(2022)
봉쇄 없는 방역 전략의 상징이었던 테그넬이 WHO행을 발표했으나, 협의가 완료되지 않은 채 발표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의 이탈은 찬반 진영 모두에게 “정책의 승리 혹은 실패의 증거”로 즉각 소환됐다.
미국 — 바이럴 공공 사서 마이컬 스릿츠 퇴직(2024)
‘도서관 기쁨’으로 200만 팔로워를 모은 사서가 불안·PTSD 등 정신건강 문제를 이유로 퇴직했다. 대중은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동시에 “어디가 그를 망가뜨렸나”라는 원인 탐색을 즉각 시작했다.
영국 — 부수석의료관 조너선 밴-탬 직무 종료(2022)
축구 비유로 방역을 설명해 ‘국민 보물’로 불렸던 밴-탬이 노팅엄대 복귀를 위해 물러났다. 공교롭게도 보리스 존슨의 ‘파티게이트’ 사과 다음 날이어서, 대중은 이를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정치적 항의로 읽으며 환호했다.
충TV를 떠올릴 때 드는 생각이
“충주시의 홍보 채널”이 아니라 “그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콘텐츠가 아니라 관계에 접속해 있었던 것이다.
관계가 끊어질 때 사람은
슬픔보다 배신감을 먼저 느끼고,
배신감은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의 자리에,
상상으로 빚어진 악당이 앉는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차례다
세상이 복잡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
지금 내 분노의 출처를 들여다봐야 한다.
충주맨 사태의 가장 큰 질문은 “그가 왜 떠났는가”가 아니다.
바로 "내가 미워하는 대상은 실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정의로운 편에 서 있다고 믿는 순간, 가장 빠르게 잔인해진다.
실재하지 않는 질투자를 향한 댓글이
실재하는 동료 공무원을 향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사자 본인이 “가슴이 아프다”고, 멈춰 달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가 충주맨을 사랑했다면,
그의 퇴직과 새로운 도전은 축하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충주맨의 퇴직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어쩌면 그의 빈자리가 아니라,
그가 상징하던 무언가가 흔들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노는 부당함에서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 분노는,
무력감에서 도망치기 위해 집단이 함께 선택한 감정이다.
지금 나는 사실에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불안을 버텨 내기 위해 우리가 함께 빚어낸,
상상된 악역에게 반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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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고든 올포트 《루머의 심리학》(1947)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1972), 《희생양》(1982)
에릭 호퍼 《맹신자들》(1951), 《변화의 시련》(1963)
헨리 타즈펠·존 터너 사회정체성 이론 (1986)
제니퍼 러너·대처 켈트너 감정평가 연구 (2001)
Vosoughi et al. 허위정보 확산 연구 (Science,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