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악성 민원, 이제는 처벌된다: 무가치함은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
- 부모의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지면, 자신의 공허를 ‘자식 사랑’으로 채운다
- 무가치한 삶과 자식 사랑이 더해지면 교사를 괴롭힌다
- 최고의 예방책은 각자 자신의 공허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2026년 3월 새 학기부터
학부모는 교사 개인 번호로 민원을 넣을 수 없게 됩니다.
학교 대표번호로만 연락할 수 있고,
악성 민원에는 과태료까지 물린다는 소식입니다.
새벽 2시에 울리는 전화, 사과문을 요구하는 카톡,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메시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건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다. 이제 좀 잡아야 한다.”
맞는 말입니다.
악성 민원은 교사가 혼자 참을 일이 아니라,
제도가 막아야 할 폭력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죠.
그게 '아이겐 노트(eigen knot)'가 해야할 일이니까요.
법과 처벌이라는 현상 너머로
이 문제가 가진 진짜 핵심을 들여다 보는 겁니다.
부모 자신의 무가치함이 시작이다
바로 무의미함(Meaningless)이다.
어빈 얄롬(Irvin Yalom), 실존 심리학자
이야기는 교사가 아니라,
부모 본인의 삶에서 시작됩니다.
중년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기까지가 다인가?”
기대했던 만큼 성공하지도,
돈이나 부동산도,
인간 관계도 제대로 쌓이지 않은 채 하루를 버티는 느낌.
내일도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무언가에
필사적으로 그리고 맹목적으로 매달립니다.
오늘 한국에서 많은 부모에게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은 바로 ‘자식 교육’입니다.
“내 인생은 별 수 없지만, 우리 애만큼은...”
내가 못 이룬 것을 너라도 대신 이루라는 마음.
겉으로는 사랑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에게 아이의 성적, 친구 관계, 선생님 한마디는 단순한 학교 일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인생 전체를 평가받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자식이 자라면서 겪는 작은 사건들도
무가치한 삶을 사는
부모 마음속에서는 엄청나게 큰 문제로 다가옵니다.
교육이 ‘투자’가 되는 순간
여기에 한국식 교육 문화가 더해집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교육을 '투자'라고 불렀습니다.
과외, 학원, 발달 교육…
돈을 많이 썼다고 생각하는 순간,
교육은 하나의 서비스이자 거래로 바뀝니다.
여기서 '돈을 많이 썼다'라고 하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교육에 돈을 들이고 있다" 라는 개념은
자신이 버는 돈에 비해
(어느 정도는) 교육비를 무리하게 지출한다는 뜻입니다.
오랜만에 기분낼 겸 비싼 고급 식당에 갔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런데 그 식당의 서비스가 별로인 거예요.
기분이 어떨까요?
당연히 언짢겠죠.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교육은 ‘유료 서비스'가 되었으니까요.
“내가 이렇게나 돈을 쏟아붓는데, 왜 이렇게 대충하세요?”
더 이상 아이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낸 돈과 받은 대접”의 문제가 됩니다.
그렇게 상처 입은 소비자의 분노가 교사를 향합니다.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요”라는 방어
악성 민원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요.”
이건 자식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부모의 자존감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내가 부모로서 실패했다”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이미 자기 인생에 실패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한마디가 너무 아픕니다.
그래서 부모는 선생님을 공격합니다.
“우리 애는 틀릴 수 없다”는 말은 결국
“나는 잘못된 부모가 아니다”라는 자기 보호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교사가 틀려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내가 옳기 위해서는 교사가 틀려야 하기 때문이죠.

결국 남는 질문
처벌은 필요합니다.
악성 민원, 이제 제대로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악성 민원인을 전부 다 감옥에 보내고
엄청난 벌금을 내면
그 부모의 아이가 더 행복해 질까요?
그 아이와 함께 지내는 친구는 더 행복할까요?
다른 질문도 던져보죠.
그 부모와 당신은 정말 다른 사람일까요?
"나는 그런 진상과는 다르다" 라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그들과는 다르다는 바로 그 인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생각 또한
다른 사람의 추태를 보면서
자신은 올려치기를 하는 거니까요.
마치, 내 아이가 옳기 위해서는 교사가 틀려야 한다고 믿는
그 진상 민원인의 마음과도 조금은 닮아있으니까요.
많은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공허'와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에,
어떤 사람은 관계에,
어떤 사람은 아이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립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매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매달림의 무게입니다.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지면,
누군가를 짓밟고, 울고불고, 집착하게 됩니다.
떠나간 연인을 미치도록 붙잡는 사람은
그 연인을 사랑해서 매달리는 게 아니에요.
그 연인이 없는 자신의 삶이 너무 두려운 것이죠.
당신도 분명,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을 겁니다.
그 집착의 무게는 몇 kg 인가요?
혹시 당신도 모르게 그 집착의 무게를
누군가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현상 너머의 핵심을 해석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진정으로 더 이롭게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아이겐 노트(eigen knot)의 존재 이유입니다.
후원하지 않아도 계속 합니다.
후원하면 더 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