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살인 사건, 그 약은 어떻게 손에 들어갔나

모텔 살인 사건, 그 약은 어떻게 손에 들어갔나
  1. 김소영 사건을 ‘싸이코패스 범죄’로만 보면,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놓친다
  2. 이번 사건에서 위험한 약물이 어떻게 처방되고 관리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3. 일상 속에 만연한 정신과 약물 복용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사이코패스였다.”
“원래부터 잔인한 인간이었다.”
“악마 같은 범죄다.”

이 사건을 둘러싼 반응들이다

그럴 만도 하다

검찰 설명에 따르면 그는 남성 3명에게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 든 음료를 건네 2명을 숨지게 하고 1명에게 중대한 피해를 입혔다. 허위 증상으로 처방받은 약을 범행에 썼고, 술과 함께 사용할 때의 위험성도 검색한 것으로 전해진다.

피의자가 '나쁜 악당'이면
쉬운 이야기가 된다.

사이코패스라는 말 하나면 더 질문이 필요없다.
그 괴물 하나만 잘라내면 끝나는
정답이 명확한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해야 한다.
이 사건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편한 이유

우리는 설명이 어려운 사건을 만나면,
개인의 인성을 따진다.

저 사람은 원래 이상했다.
원래 잔인했다.
원래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약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가 위험성을 인정해 통제하고 있는 약이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괴물의 범죄’로만 읽는 순간,
우리는 가장 불편한 질문을 지워 버리게 된다.

정신과 약은 다르다

흔히 이런 반론이 나온다.
칼로 사람을 죽였다고 칼을 판매한 마트의 책임을 물을 순 없다고.

칼 판매와 정신과 약 처방은 구조가 다르다.

칼은 누구나 살 수 있고 용도 또한 매우 다양하다.
반면 이번 사건에 등장한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다르다.

이 약은 아무나 사는 물건이 아니다.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조제를 거쳐야 한다.
국가가 면허를 준 사람만 판단하고 다룰 수 있다.

특수한 사람에게만 권한이 있다는 건,
책임도 함께 따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피의자의 형사책임과 별개로,
“처방자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말은 쉽게 성립하기 어렵다.

처방은 판매가 아니다.
위험을 대신 판단하는 일이다.
환자가 모르는 위험까지 대신 판단하는 것이 면허의 이유다.

한국의 법

한국 법원도 그런 방향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중대한 부작용 우려가 있는 약품을 투여할 때 그 발생 가능성과 악화 방지를 위한 조치사항을 환자에게 고지하는 것이 진료상의 의무라고 판단한다. 단순히 종이 한 장이 아니라, 환자가 스스로 판단·대처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약사법

약사에게도 역할은 있다. 약사법 제24조 제4항은 약사가 의약품을 조제하면 환자 또는 보호자에게 필요한 복약지도를 구두 또는 복약지도서로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조제는 단순 전달이 아니라, 위험을 이해시키는 행위를 포함한다.

복잡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환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방과 조제의 '책임'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위험한 약을 다루는 전문가에게 사회가 기대하는 능력은,
바로 그 위험 신호를 전문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오남용 가능성, 반복 처방 필요성, 병용 위험, 의존 가능성, 이상 징후...
이 모든 것을 '전문적으로' 살피는 일이
그 직업이 가진 핵심 업무다.


벤조디아제핀은 원래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약이다

이 약은 불안과 불면 등에 쓰이지만, 오남용, 의존, 금단 위험이 있다. 해외 기관과 국내 치료 지침도 반복해서 같은 점을 말한다. 이 약은 짧고 신중하게 써야 한다. 술과 함께 복용하면 안 된다.

즉, 이 약은 애초에 “가볍게 주고 가볍게 먹는 약”이 아니다.
안전해서 마구 사용해도 되는 약이 아니다.

벤조디아제핀은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약물이고,
알코올 역시 같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술을 마시면 추위가 덜 느껴지고, 넘어진 당시엔 아픔을 못 느끼는 이유)

따라서 술과 이 약물을 함께 복용하면
판단력 저하, 의식 저하, 호흡 억제 같은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연히 일어난 재앙이 아니라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과이며,
함께 복용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하는 사안이다

이 사건은 단지 기상천외한 범죄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 얼마나 위험한 약물을
가볍게 대해 왔는지도 드러낸다.

왜 이런 약은 이렇게 널리 퍼지는가

벤조디아제핀을 1회 이상 처방받은 성인이 2,200만 명이 넘는다.
정신과가 아닌 다른 의료 과정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생각보다 훨씬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약물인 것이다.

이 약의 안정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 아닌데도,
처방되는 횟수는 점점 더 증가한다는 점이 어딘가 마음에 걸린다.
아니, 걸려야 한다.

산업은 언제나 자신을 확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약물은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그 약물이 많이 팔릴 수록 이득을 보는 집단도 반드시 존재한다.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식,
더 빨리 개입할 수 있는 방식,
더 반복 가능한 방식으로.

짧은 진료,
빠른 처방,
가시적인 반응,
반복 가능한 소비.

그래서 남는 것

지난 20년간 항우울제 처방이 두 배 증가한 국가들(예컨대 영국, 미국, 호주, 아이슬란드, 캐나다)에서 우리는 같은 기간 동안 정신 건강 장애도 두 배 늘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이것은 많은 나라에서 처방의 증가가 정신 건강 장애가 늘어나는 데 책임이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약물이 효과가 있다고 했을 때 예상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이다.

제임스 데이비스(의료인류학&심리학자 교수), <정신병을 팝니다>

이 사건에서의 잘못한 사람은 명백하다.
법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줄 것이며,
잘못의 책임이 누구인지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사건을 거기서 끝내면,
우리는 또 하나의 괴물 이야기만 소비하게 된다.
피해자는 단지 운이 나빠서 생을 마감한 사람이 된다.

누가 그 약을 어떤 기준으로 처방했는가.
어떤 설명이 있었는가.
반복 처방 과정에서 어떤 점검이 있었는가.
복약지도는 실제로 이루어졌는가.
병용 위험은 얼마나 분명히 고지되었는가.
오남용 위험 신호는 놓치지 않았는가.

이 질문들은 범인을 감싸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다음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질문이다.


결론

사회는 괴물을 원한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괴물만 치우면 세상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잔혹성만이 아니라,
통제되어야 할 위험한 약물이
얼마나 느슨한 이해 속에서 다뤄지고 있었는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은 사건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이 처방과 관리와 경고와 책임의 문제를 지워 버리는 순간,
그 설명은 진실의 절반만 말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한 개인이 위험한 약을 손에 넣고,
그것을 범행 도구로 바꾸는 동안
누구도 멈춰 세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참고자료

사건 사실 확인

1. 연합뉴스, 강북 모텔 연쇄살인범 김소영 구속기소…“이상동기·계획범죄”(종합), 2026-03-10. ([YNA][1])

2. 연합뉴스, ‘강북 모텔 연쇄살인범’은 20세 김소영…검찰, 신상 공개(종합), 2026-03-09. ([YNA][2])

법·제도 관련

3.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류 정보 – 향정신성의약품 정의. ([MFDS][3])

4. 국가법령정보센터, 약사법 제24조 제4항(복약지도). ([Law.go.kr][4])

5. 국가법령정보센터 판례, 손해배상(의) – 중대한 부작용 약품 투여 시 설명의무 관련 판례. ([Law.go.kr][5])

약물 위험성과 처방 주의

6. U.S. FDA, FDA Requiring Boxed Warning Updated to Improve Safe Use of Benzodiazepine Drug Class.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6])

7. U.S. FDA, Benzodiazepine Drug Information.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7])

8. NIAAA, Alcohol-Medication Interactions: Potentially Dangerous Mixes. ([NIAAA][8])

9. NICE, Quality Statement 3: Pharmacological Treatment, Anxiety Disorders. ([NICE][9])

국내 처방·학술 자료

10. Oh SH et al., In-depth investigation for prescribing trends of benzodiazepines in Korea, PubMed. ([PubMed][10])

11. 대한불안의학회지, 공황장애와 범불안장애 약물 치료에서 벤조디아제핀 선택, 2025. ([KCI][11])

12. 대한불안의학회지, 공황장애와 범불안장애 치료 시 벤조디아제핀의 내성발생, 2025. ([KCI][12])

13. 대한불안의학회지, 공황장애와 범불안장애 치료에서 벤조디아제핀 필요 시 처방의 양상, 2025. ([KCI][13])

비판적 참고 자료

14. BMJ Medical Humanities 블로그, Sedated: How Modern Capitalism Created Our Mental Health Crisis. ([BMJ Blogs][14])

15. James Davies <정신병을 팝니다>, (사월의 책[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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