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를 시작한 이유
우리는 ‘이상하게 좋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무한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지만, 정작 의미 있게 남는 것들은 사라져만 갑니다.
전 세계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더 많아졌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열면 15초짜리 영상들이 쏟아집니다.
성공 비법, 심리학 이론, 인생 조언까지….
보고 나면 똑똑해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알았다고 느꼈을 뿐, 실제로 습득한 건 아무것도 없었던 겁니다.
이해했다고 착각한 거죠.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한다는 콘텐츠를 보면서 우리는 “이해했다”는 느낌을 소비하지만,
실제로는 키워드 몇 개만 스쳐 지나갔을 뿐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나만의 목소리
요즘은 AI가 이메일도 써 주고, 자기소개서도 써 줍니다.
편리하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AI가 ‘나’를 대신해 말할 때,
AI가 인식하는 ‘나’는 대체 누구일까요?
우리는 ‘대체 가능한 개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비슷한 밈을 공유하고, 비슷한 해시태그를 달고, 비슷한 생각을 말합니다.
좋아해야 할 것 같으면 좋아하고, 싫어해야 할 것 같으면 싫어하죠.
그 기준은 나를 둘러싼 ‘우리’이고요.
내가 아니어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렇게 우리는 잊힌 개인들이 모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뉴스레터입니다
뉴스레터는 느립니다.
자극적인 키워드도 없습니다.
유행하는 스타일도 없습니다.
AI 시대에 가장 어리석은 선택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래서 가치가 있습니다.
속도를 따라잡지 않기로 했습니다
AI 시대의 변화는 우리가 일일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릅니다.
새로운 도구와 유행은 매일 바뀌고, “최신”은 금세 “구식”이 됩니다.
어차피 따라잡지 못할 속도라면, 그 속도와 경쟁하는 건 옳지 못한 전략입니다.
저는 대신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또 왜 살아야 하는가.
기술이 앞서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건 지식이 아니라 의미니까요.
빠른 세상에서,
느린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 뉴스레터는 그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한 작은 장치가 되려 합니다.
속도를 포기하는 대신, 방향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의 문제를 통과하는 유일한 생존 전략입니다.
첫째, 이곳은 깊이 읽는 공간입니다
무한 스크롤도, 다음 영상 자동 재생도 없습니다.
시작과 끝이 있는 글이 있을 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당신의 마음은 세상 속 깊은 바다로 들어갑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봅니다.
감탄, 찬사, 고요, 그리움, 사유….
우리의 마음은 스쿠버 다이빙을 하듯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둘째, 이곳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있는 공간입니다
살아 있는 누군가가 이 공간에 존재했고, 이렇게 생각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100년이라는 시간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또 어떤 가치와 함께했는지—그 흔적이 있습니다.
셋째, 이곳은 군중에서 벗어나는 공간입니다
피드가 아닌 수신함으로 찾아갑니다.
노출되는 정보가 아니라, 각자의 필요가 담긴 공간으로요.
이 뉴스레터가 드리고 싶은 것
저는 여기서 ‘빠른 답’을 드리지 않을 겁니다.
대신 함께 ‘느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느린 질문 3가지
- 우리는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
-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을 정말 아는가?
-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필요한 노력인가?
슬로우 미디어란
“좋은 미디어는 재료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집중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이 뉴스레터는 그 정신을 따르려 합니다.
양보다 질을, 속도보다 깊이를, 반응보다 성찰을 선택하겠습니다.
느림을 선택할 용기
이 뉴스레터를 시작하는 건 나다움의 선언이자,
나다움을 지우는 세상에 대한 저항입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었다는 건, 당신에게도 느린 것들의 가치를 아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알고리즘이 정해 주는 대로 살기보다,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요.
사유와 나다움의 공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